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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ZINE
겨울과 여름은 1년 중 몇 달씩 충분히 존재감을 뽐내지만 봄과 가을은 그렇지가 않다. 매년 직딩 라이프와 육아로 바쁜 와중에 의식적으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제대로 봄 바람 가을 바람 마셔볼 틈도 없이 계절이 지나버린다. 겨울도 여름도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봄과 가을이 워낙 짧은 탓에 더 귀중하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봄과 가을은 24절기와는 별개로 감성적으로는 짧은 계절일 수밖에 없겠다. 입춘에서 입하까지, 입추에서 입동까지, 명목상으로는 3개월이라는 시간을 배분해놓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음력 1월 엄동설한을 봄이라 여기지 않을 것이고, 따가운 음력 7월의 햇볕을 가을이라 여기지 않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남들보다 좀(?) 길었던 대학시절에 내가 생각하는 봄과 가을은 중간고사의 계절이었다. 왜 하필 날씨..
인지는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고도 했던가 뭐랬던가, 그런데 언어도 경험의 지배를 받는다. 받아도 아주 많이 받는다. 쉬지 않고 떠드는 아이하고도 대화다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인생 경험이 극히 적고, 거기에서 더해서 어휘도 아주 적고, 그렇다보니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대화가 길게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 attitude problem이라는 말을 미군 부대 시절 경험으로 배웠다는 말을 하려고 서론이 길었다. 돌이켜보면 군생활에서 사회생활 경험을 일찍 할 수 있었던 건데, 어릴 때라 그 사실을 잘 몰랐다. 혹은 덜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생활이란... 타인과 타인이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관계를(너가 이만큼 해라. 나도 이만큼 할게. 이거 안 지키면 우리 관계는 나가리야, 라고 할 수 있는 ..
직장인으로서의 성공에 관심을 충분히 가지지 않았으면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문제점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문득 그런 궁금함이 생겼다. 꽤 괜찮은 리더들도 때론 쓸 데 없는 걸 알면서도 어떤 일을 하고 (이건 주로 월급쟁이들) 때론 확신에 찬 삽질을 하곤 한다. 너무 자신의 판단을 과신해서 그런 경우는 뭐, 그렇다 치고, 때론 본질적인 성과나 효율 면에서 최선의 선택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그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눈에 보이는 실적이라던지, 명분이라던지, 분위기라던지... 왜 그러는지 전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본질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그런 결정을 한 사람도, 그 결정대로 실행하는 사람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
나름 긴 5일의 장례를 치르고, 연이어 긴장된(?) 회사 일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 죽음을 준비하는 것. 간단하게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고 묻힐 곳을 평소 생각해두는 정도가 될 수 있고, 장례 절차, 어느 정도까지 종교적일지(명확하게 어느 종교식이라고 하면 그 틀이 있을 것이고, 어느 종교이긴 한데 간소하게 하고픈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는 종교색 없이, 정해진 틀이 없이...등)도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누구에게 연락을 할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연락을 빠트리는 일로도 지나고 나면 서로 곤란할 수 있으니. - 장례절차에서 불교식과 유교식의 경계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하다. 딱히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기독교식 장례의 경우 독자적인 ..
어린 시절 기억에 울산 일산 해수욕장에는 해조류와 자잘한 쓰레기가 떠다니고, 수영을 할 수는 있지만 쾌적하다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물도 많이 맑아졌고, (태화강이 맑아진 것과 같은 이유라고 함. 하수도를 정비해서 더러운 물이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했다고.) 별개로 이미 몇 년 전에(?) 정비한 저 앞 공원도 같이 있는 걸 보니 좀 더 잘만 가꿨다면 전국구 여행지가 될 수도 있는 곳이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해변을 난잡하게 둘러싼 식당, 술집, 노래방, 편의점, 모텔촌... 그리고 바닷가를 둘러싼 도로로 차가 많이 지나다닌다. 바닷가만 달랑 있을 뿐 도로나 상가와 완충역할을 하는 공간도 부족함.(공원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차가 없는 산책로 정도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난잡하게 개..
'든자리는 몰라도'... 는 아니다. 나처럼 예민한 사람은 든자리가 신경쓰이고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난자리는 안다'는 말, 물론 이건 사실이다. 있던 게 없는 것, 없던 게 있는 것 모두 감각을 자극한다. 우선, 아침에 일어날 때 알람소리를 빨리 꺼야 한다는 조급함이 없다. 알람이 울리면 아이들 깨기 전에 빨리 끄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새벽잠이 방해를 받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입을 옷을 찾고 움직일 이유도 없다. 눈 뜨면 커튼도 열고 불도 켜고 소리도 맘껏 낸다. 오늘 아침에 오~랜만에 그렇게 해보고 나 스스로도 새로웠다. 아침 샤워를 하며 뉴스를 틀어놓은 건 처음인 것 같다. 그 이후로는 평소와 비슷하고, 다른 것은, 집을 나설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전 막판 5초 정도, 아이들 자는 ..
인터넷의 등장 이후 게시판이 활성화되면서 생겨난 현상인 것 같다. 무개념+ 형태로 다양한 집단이 거론되는 일. 흉악범죄 뉴스를 접할 때면 세상이 흉흉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옛날보다 정보가 널리 전파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개념 집단도 원래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무개념 소식이 많아진 건지, 그건 알 수 없다. 공유버튼을 누르고 두 번 정도 화면을 터치하면 원본이 전달될 만큼 정보의 전달이 쉬워졌고 그만큼 분노도 쉽게 퍼져나간다. 같은 이야기인데, 분노도 지금 세상에 분노할 일이 더 많아진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분노를 공유하기가 더 쉬워졌다. 홍콩 만큼은 아니지만, 살아남기 꽤나 어려운 이곳 한국에서 살면서 분노도 쉽게 쌓이고 이 분노는 핸드폰 앱을 통해 쉽게 퍼져나간다. 그리..
낯선 풍경으로의 도피. 퇴근 길 버스에서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이 문득 궁금했다. 로드뷰에서 우연히 보고 찾아보니 이미 몇 년 전 철거된 특이한 건물이 보인다. 지금 지어지는 건물에서는 보기 힘든, 비 전문가가 설계한 듯한 구조와 낡은 모습.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출근하는 저녁 시간, 나는 서울의 숨은 명소(?)를 탐닉했지. 비가 그치지 않을 것처럼 엄청나게 퍼붓더니 거짓말처럼 폭염주의보니 하면서 잊혀졌다. 그래도 조금만 걸어도 신발과 바지가 젖어버리던 그날... 나는 우수(?)에 젖어 감상으로 도피... 평소 피규어를 수집하는 취미도 없지만 핫딜(?)이라는 이야기에 충동적으로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결국 오랜 후지만 충동적으로 결제까지 했다. 어린 시절 재밌게 보았던 스누피 만화를, 아이들은 캐릭터 이름..
"성산포에서는 그 풍요 속에서도 갈증이 인다. 바다 한가운데에 풍덩 생명을 빠뜨릴 순 있어도 한 모금 물을 건질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가장 죽기도 좋은 곳 성산포에서는 생과 사가 손을 놓치 않아 서로 떨어질수 없다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살아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워할 것도 없이 돌아선다" 성산포에 대한 시, 그 중 한 구절. 살아서 피웠다 한들, 지는 꽃에게 아쉬움이 없으랴. 아쉬움이 없다는 건 반성하지 못하는 이들의 착각 아닐까. 완벽하지 못한 인생, 아쉬운 것도 자연스럽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아쉬움의 크기만큼 슬픈 것도 그렇다.
담배연기, 꾀죄죄한 낡은 소파, 음침한 분위기의 만화방이 '카페'가 수식어로 붙는 공간으로 바뀐지도 이미 오래된 것 같다. 우선 금연인 점이 좋은데, 요즘 흔한 저런 골방식 부스에서 담배를 핀다면 냄새가 감당이 안될것 같긴 하다. 이사온 후 가까운 만화방을 찾아보고 장소를 알아봐둔 곳인데 실제로는 엊그제 처음 갔다. 어린이집 입학식에 갔다가 비는 시간에 가봤다. 만화방을 오랜만에 가면 가장 먼저 생기는 문제는... 요즘 읽을 만한 만화가 뭔지 모른다는 점. 그래도 오며 가며 귀동냥한 제목으로 이 만화, 저 만화 1권만 들고 가서 훑어본 후 종목을 선정한다. 원래 옛날에도 만화방에서 라면을 사먹진 않았던 터라 봉지라면은 건너 뛰었는데, 데스크에 광고하고 있는 조그만 치즈케이크가 맛있어 보여 케이크 한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