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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ZINE
종일 감기 기운으로 골골댔지만 막상 가족들 모두 자는 조용한 시간이 생기니, 책방에 어슬렁 거리고픈 욕심이 생긴다. 책상에 쌓인 물건을 치우고 의자에 앉는다. 서가에 꽂혀 아직도 읽히지 못한 불행한 책들이, 줄지어 어제나 저제나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책은 그나마도 액자에, 새로 산 다른 책에, 잡동사니에 가려져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언가 끄적거리거나 책을 읽는 일상이 어쩌다 사치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걸까. 다시 출장 준비를 하는 것도 재미 있고, 사람 만나는 일도 나름 즐겨하고, 그러면서도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그것이 익숙한 사람. 이 책들을 보며 '재미있을 것 같은데... 영 읽을 시간이...'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고 보니 학창시절 시험기간에 공부하기 싫을 때, 집에..
가장 유명한 골프 전시회가 열리는 Orlando Convention Center. 이 건물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모르지만, 오래되긴 했을 것 같다. 휴식용 의자가 놓인 자리에서 뒤를 보니 전화 플러그가 있다. 예전에는 공중전화가 놓여있던 곳이었을 테고, 바쁜 전시회 기간에는 전화를 쓰려는 사람들이 이곳에 줄을 서있기도 했겠지. 세상에서 한 때는 중요한 무언가였던 것들이, 이렇게 여드름 흉터같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간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그마저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저기에 낡은 전화선이라도 꽂으면, 보고싶은 사람에게 말을 건넬 수 있을지.
언젠가, 나의 가족도, 나도, 나의 아기도 누구나 인생의 길고 짧은(....) 여정의 끝에는 죽음이라는 출구가 있다.
갑자기 추워진 겨울 밤거리를 내려다보며 따뜻한 집안에 있는 기분이 좋다. 그러다 덤불 속에서 추위를 피하던 고양이나 지하철 계단의 걸인, 혹은 추위 속에 장사가 힘들어진 듯한 지하철 토스트 아줌마 생각도 난다. 배가 부르면 추위가 한결 덜하고, 마음이 따뜻하면 잠깐의 추위도 즐겁다. 이번 겨울... 배 부르고 속편하게 보냅시다
지사의 출발...인가 하는 시를 본적이 있다. 컴으로 쓰는 중이었으면 검색을 해보겠지만 폰이라 귀찮아서 건너뛰고, 아무튼 뜻을 가진 선비의 출발이라는 뜻이었고 내용은 뭔가 의지와 새벽의 깨어나는 기운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삼촌의 다락방에 걸린 그 시를 보며 잘 이해 되지 않는 시구절을 보고 또 보고 했었다. (그러고보니 책을 꽂아만 놓을 것이 아니라 좋은 시나 좋은 구절은 그때 그때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곳에 두는 것도 좋겠다. 물론 글을 뗀 후의 일이겠지만.) 어린 아이들도 잘은 모르지만 음악에서 슬픔을 느낀다. 어쩌면 이해할 수 있는 정도 선에서라면 시도 그 느낌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동시를 통해 아이들이 글을 통한 기쁨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을지는, 아이가 더 커야 알 수 있겠지. 빨리 시..
세상에 쓸모없는 행사 중에 하나. 어느덧 6년차다. 첫 4년인가는 반나절짜리 외출(?)의 기회를 주는, 싫지않은 교육이었지만, 5년차부터인가 아침 일찍 참석해야한다. 고작 하는 일이래야, 평소에는 인터넷에서만 접했던 어버이연합스런 꼴통 아저씨들이 나와서 50년 전 시대정신을 횡설수설 떠드는 것을 듣는 일, 그리고 민선 구청장이 사람 좋은 척 웃으면서 인사를 하면 본의 아니게 얼굴 도장 찍히는 정도. 원래 정해진 날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더 가까운 곳으로 슬슬 걸어서 다녀왔을 텐데, 날짜를 놓쳐서 버스타고 가야한다. 일찍 일어나는 거야 그냥 잠깐 귀찮은 일일 따름이고, 번거로움도 금요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뒤로할 수도 있는 건데, 이유 모를 기분은... 마치 군대 가던 전날 기분? ㅎㅎ 입대 전 한참 동안..
1. 열흘 사이 세 군데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쓰러지신 후로 의식을 찾지 못하고 가시고, 최근 급격히 지병이 악화되었다가 잠시 호전되어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후 떠나시고, 2년 가까이 병상에서 고생을 하다 떠나신 분. 게다가 추석 연휴도 있어서 장례를 치르는 가족 당사자들은 더 허전하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추석에도 변함 없이 일해야 하는 많은 업종 중에는 장례 관련 종사자들도 있었구나 싶었고. 2. 부산에는 영락공원이라는 공원묘지가 있어서 부산에서 치르는 화장의 대부분은 그곳에서 치른다고 한다. 부산 말고도 몇 곳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원묘지의 이름에 '영락(永樂;영원한 즐거움)'을 쓰고 있다. 오늘 새벽에 다녀온 양재 끝자락에 있는 추모공원의 이름은 시안時安이다. 영원한..
시험과목으로서의 역사라는 과목은 참 재미없었는데 역사책이나 역사를 바탕으로 한 뒷이야기는 이다지도 흥미진진하다. 역사책을 읽으며 사건들의 퍼즐, 인과관계, 인물과 사건의 관계가 정리되고 이해되는 맛에 책을 읽는다. 역사는 기록되는 순간 사가(기록자)의 역사가 된다고는 하지만, 일어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명확할 텐데, 요즘은 명확한 역사라도 아니라고 우기면 그렇게 된다고 믿는 또라이들이 많다. 그냥 재미로 읽다가도 이해하고 기억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하지만 그런 놈들 때문에 유일한 취미소일거리를 하는 와중에도 의식을 해야하는 것이 한편으론 억울. 내일은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고딩 시절, 10년 넘게 책장에서 먼지만 모으던, 심지어 일본식으로 세로로 제본되어 읽기 힘든 낡은 책..
느즈막히 퇴근하는 길, 강변북로가 너무 막히더니, 막히는 곳을 보니 어떤 차가 완전히 타버려서 쇳조각들만 남아있었다. 어떤 사고였는지 모르지만 몇 시간 전에는 누군가, 늘 그랬던 것처럼 시동을 걸고 늘 가던 곳으로 출발하는 길이었겠지. 점쟁이들이 먹고 사는 이유, 다양한 종교에 사람들이 의지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미래의 불확실성이지만, 평소에는 잊고 지내는 사실... 시간은 유한하고 기회는 한 번뿐인 것들, 한번에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당연해보였지만 그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모여 지나간 미래가 된다. 피곤한 퇴근 길, "시간 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많이 보던 시절, 스스로가 헐리웃 매니아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결국 비디오가게 선반을 채운 영화들 대부분은 미국영화였지. 어디서 난 사진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언터처블의 기차역 총질 장면이(슬로우 모션으로 유모차가 계단으로 굴러가는) 생각난다. 사춘기여서 그랬는지 살던 곳을 떠나와서 그랬는지 원래 올빼미 체질이어서 그랬는지, 아무튼 밤에 깨있는 시간이 많은데 책도 좋지만, 영화가 제일 좋았다. (그땐 세상에 읽을 만한 책이 이렇게 끝도 없이 많을 줄 몰랐지) 외로운 밤 비디오 일체형 브라운관 티브이는 지금 스마트폰 못지 않은 소중한 IT기기였다. 그속에 펼쳐지는 미국의 이런저런 풍경을 보다보니 한번도 가본적 없는 미국이란 곳이 정 들고 익숙해지다 못해 묘한 향수가 생길 지경이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