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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ZINE
겨울과 여름은 1년 중 몇 달씩 충분히 존재감을 뽐내지만 봄과 가을은 그렇지가 않다. 매년 직딩 라이프와 육아로 바쁜 와중에 의식적으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제대로 봄 바람 가을 바람 마셔볼 틈도 없이 계절이 지나버린다. 겨울도 여름도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봄과 가을이 워낙 짧은 탓에 더 귀중하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봄과 가을은 24절기와는 별개로 감성적으로는 짧은 계절일 수밖에 없겠다. 입춘에서 입하까지, 입추에서 입동까지, 명목상으로는 3개월이라는 시간을 배분해놓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음력 1월 엄동설한을 봄이라 여기지 않을 것이고, 따가운 음력 7월의 햇볕을 가을이라 여기지 않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남들보다 좀(?) 길었던 대학시절에 내가 생각하는 봄과 가을은 중간고사의 계절이었다. 왜 하필 날씨..
오래 전 학생 시절, 연애 감정을 베이스캠프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다. 어디로 가든 다시 돌아오는 곳, 위안과 휴식을 얻는 곳. 베이스캠프는 다시 돌아올 곳이기 때문에 평소 소홀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오래 머물 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소중히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저 방은 이도 저도 아닌 대기소 같은 공간이었다. 모든 조명을 다 켜도 환해지지 않던 방, 그보다 더 어두운 욕실, 카페트 틈 촘촘히 먼지가 가득했던 곳. 감옥 같기도 했던 생활... 늘상 잠시 후의 일정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소 여행을 다닐 때마다, 특히 다시 올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더더욱, '이 공간은 나에게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보곤 한다. 여행..
19세기 후반, 베를린에서 일본까지 17개월 동안 말을 달리며 대륙과 국가들을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았다는 사람에 대한 글을 읽었다. 태블릿PC, 스마트폰, 보조배터리에 WIFI EGG를 지참하는 요즘의 여행과는 형식 면에서 많이 달랐을 것이다. 말에는 약간의 옷과 신분증과 돈, 일기장과 필기구가 전부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사진을 찍고 곧바로 페북에 올리고 1-2분만 지나도 좋아요 개수를 확인할 수 있는 여행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렇게 여행하지 말라는 법은 없긴 하다. 오래 전에 여행기를 읽으면서 문득, 이제 미지의 세계는 없어진 것 같아 아쉬웠던 적이 있다. 제주도 성산일출봉 한 중간에도 한 때는 사람이 살았다고 하고, 이제는 국립공원으로 보호받는 곳에서 언제는 여행객이 물고기를 잡고 취..
동남아시아의 비가 많은 나라에 가면 비가 자주 많이 오는 곳 다운 건물의 특징들이 있다. 처마가 길거나, 지붕 덮힌 실외 통로, 배수가 잘 되는 재료, 탁 트인 베란다가 흔하다던가. 바닥 물청소 후 바닥 말리는 송풍기도 한국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비 오는 소리나, 처마에서 흐르는 물, 주차장에 고인 물... 에어컨 바람 선선한 실내에서 비 구경 하니 좋다. 맛 좋은 커피가 없어서 아쉽고, 앉아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 귓가를 때려대는 인도 중국 짬뽕스러운 국적불명의 노래만 끄면 딱이겠구만.
인지는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고도 했던가 뭐랬던가, 그런데 언어도 경험의 지배를 받는다. 받아도 아주 많이 받는다. 쉬지 않고 떠드는 아이하고도 대화다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인생 경험이 극히 적고, 거기에서 더해서 어휘도 아주 적고, 그렇다보니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대화가 길게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 attitude problem이라는 말을 미군 부대 시절 경험으로 배웠다는 말을 하려고 서론이 길었다. 돌이켜보면 군생활에서 사회생활 경험을 일찍 할 수 있었던 건데, 어릴 때라 그 사실을 잘 몰랐다. 혹은 덜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생활이란... 타인과 타인이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관계를(너가 이만큼 해라. 나도 이만큼 할게. 이거 안 지키면 우리 관계는 나가리야, 라고 할 수 있는 ..
직장인으로서의 성공에 관심을 충분히 가지지 않았으면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문제점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문득 그런 궁금함이 생겼다. 꽤 괜찮은 리더들도 때론 쓸 데 없는 걸 알면서도 어떤 일을 하고 (이건 주로 월급쟁이들) 때론 확신에 찬 삽질을 하곤 한다. 너무 자신의 판단을 과신해서 그런 경우는 뭐, 그렇다 치고, 때론 본질적인 성과나 효율 면에서 최선의 선택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그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눈에 보이는 실적이라던지, 명분이라던지, 분위기라던지... 왜 그러는지 전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본질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그런 결정을 한 사람도, 그 결정대로 실행하는 사람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
나름 긴 5일의 장례를 치르고, 연이어 긴장된(?) 회사 일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 죽음을 준비하는 것. 간단하게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고 묻힐 곳을 평소 생각해두는 정도가 될 수 있고, 장례 절차, 어느 정도까지 종교적일지(명확하게 어느 종교식이라고 하면 그 틀이 있을 것이고, 어느 종교이긴 한데 간소하게 하고픈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는 종교색 없이, 정해진 틀이 없이...등)도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누구에게 연락을 할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연락을 빠트리는 일로도 지나고 나면 서로 곤란할 수 있으니. - 장례절차에서 불교식과 유교식의 경계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하다. 딱히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기독교식 장례의 경우 독자적인 ..
어린 시절 기억에 울산 일산 해수욕장에는 해조류와 자잘한 쓰레기가 떠다니고, 수영을 할 수는 있지만 쾌적하다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물도 많이 맑아졌고, (태화강이 맑아진 것과 같은 이유라고 함. 하수도를 정비해서 더러운 물이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했다고.) 별개로 이미 몇 년 전에(?) 정비한 저 앞 공원도 같이 있는 걸 보니 좀 더 잘만 가꿨다면 전국구 여행지가 될 수도 있는 곳이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해변을 난잡하게 둘러싼 식당, 술집, 노래방, 편의점, 모텔촌... 그리고 바닷가를 둘러싼 도로로 차가 많이 지나다닌다. 바닷가만 달랑 있을 뿐 도로나 상가와 완충역할을 하는 공간도 부족함.(공원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차가 없는 산책로 정도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난잡하게 개..
글을 쓰려니 English patient 영화가 생각난다. 영국인이 많은 듯. 개개인의 삶의 질은 높지 않은 느낌. 가기 전부터 돌아온 후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걱정거리들. 세상에 걱정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없지. 아침이어도 춥지 않고 샤워기에선 열기에 데워진 물이 나오고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고. 수영 중에는 아무 생각도 안든다. 물 위에 다 내려놓고 싶네.
'든자리는 몰라도'... 는 아니다. 나처럼 예민한 사람은 든자리가 신경쓰이고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난자리는 안다'는 말, 물론 이건 사실이다. 있던 게 없는 것, 없던 게 있는 것 모두 감각을 자극한다. 우선, 아침에 일어날 때 알람소리를 빨리 꺼야 한다는 조급함이 없다. 알람이 울리면 아이들 깨기 전에 빨리 끄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새벽잠이 방해를 받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입을 옷을 찾고 움직일 이유도 없다. 눈 뜨면 커튼도 열고 불도 켜고 소리도 맘껏 낸다. 오늘 아침에 오~랜만에 그렇게 해보고 나 스스로도 새로웠다. 아침 샤워를 하며 뉴스를 틀어놓은 건 처음인 것 같다. 그 이후로는 평소와 비슷하고, 다른 것은, 집을 나설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전 막판 5초 정도, 아이들 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