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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ZINE
지나다니며 자주 보는 건물이다. 가까이서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원룸 위에 다른 용도일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 작은 엘리베이터와 좁은 계단실과 한 층에 한 방씩만 있는 구조가 눈에 들어오듯 그려진다. 방은 클 수가 없지만, 건물 구조 상, 삼면이 창으로 되어 더할 나위없이 탁 트인 공간일 것 같다. 옆으로는 하루에도 잊을 만할 때마다 한번씩 기차가 지나다니는 곳. 자취방이라는 공간은 구질구질함과 낭만, 칙칙함과 아늑함의 경계선에 있는 곳이다. 뭐 하나만 부족해도, 둘 중 나쁜 쪽으로 쏠리기 마련. 만약 지금의 내가 어쩔 수 없이 저런 공간에서 산다면 딱하다는 소릴 들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자취방 하면 문득 떠오르는 내 이십대 끝자락의 자유로움, 문득 그리워진다. 원룸의 그 작은 냉장고가 그렇듯이, 그 곳..
가까이서 보면 그냥 나무 두어 그루에 어쩌면 파리 모기 벌레나 날아다니는 곳일 수도 있지만. 딱 내가 좋아하는 불쑥 나온 조그만 동산. 시골길을 지나다 눈에 띄길래, 마침 차도 없어서 차를 돌려서 사진을 찍었다. 태극기를... 어쩌고 하는 영화에 나온, 이름이 영신이였던가 싶은, 밭일로 얼굴이 그을은 착한 여인과 함께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또는, 그런 풍경이라는 글을 아주 오래전에 썼었다. 화려하고 성공적이고 부유한 삶도 꿈꾸지만, 한편으로는 평화롭고 안빈낙도하는 삶도 꿈꾼다. 누구나. 울산 어느 주말 오후, 해안가 도로를 달리던 중 그 옛날 허접한 디카로 남긴 언덕배기를 본 후로 늘 꿈꾸는 풍경이다. 바람과 맑은 공기와 적당한 비와 눈과 고요함이 가득한 곳.... 그곳은 '잠깐 다녀오는 ..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그리고 그 옆에는 아이들이 자고 있어. 간만에 길지도 않은 출장을 다녀오는데도 아이들 생각에 그립고 짠했던 며칠. 타이페이 송산공항에 가까운 거래처 근처에서 하늘을 보니 비행기가 맑은 하늘을 가로 지르고 있네. 덥고 비 잦은 대만인데, 요즘은 덥고 비는 안오는 서울보다 조금 시원한 것 같다. 1년중 대만이 한국보다 쾌적한(?) 특이한 시기다. 아이들과 함께! 주말이다!
평소에는 그다지 자막 거부증이 없는데 어제는 그냥 한국영화가 보고싶었지. 이 영화는 왠지 대사가 선명하고 말도 길지 않고 귀에 꽂히는 맑고 건조할 것 같았다. 일제시대가 배경이라는 점을 생각못했다. 생각보다 자막이 많았네. 동문관계가 끈끈하지는 않은 학풍 탓일지, 아니, 누구나 그런 거겠지만, 그동안 윤동주 시인이 선배라는 느낌이라던지, 나와 멀게나마 관계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의 고뇌를 이해하게 해준 시간. 다른 이의 삶을 살고 다른 이의 경험을 경험하는 것이 영화인데 그런 면에서 다른 이의 고민이 느껴졌다면 좋은 영화라 해야겠지. 윤동주시인이 다닌 릿교대에서 매년 2월 기일즈음에 추모 채플이 열린다고 한다. 언제가 기회되면 한 구석자리에 앉아있고 싶다. 그전에 조금이..
"교실에 들어온 준원이 몸이 안 좋은지 누워 버립니다 잠깐잠깐 일어 나기는 하지만 누워서 뒹굴뒹굴 일어나서 놀자고 하면 "싫어"하네요 그래도 집놀이 할때는 일어나 들어갔다 나왔다 두드려 보며 활동쌨어요 놀이가 끝나고 탐색이 끝났는지 또 누웠네요 날씨가 더워 놀이터에서 물장난을 하였는데 신나게 물을 친구들 얼굴에 뿌리고 첨벙첨벙 물놀이 했어요 교실에 들어와 깨끗이 닦고 기저귀 가는데 눈을 감고 자려는 준원이 밥 먹고 자자고 하자 싫다며 밥 안먹는다고... 계란장조림을 보여주며 먹자고 하자 일어나 밥 다 먹고 약도 먹고 다시 누워 버립니다" 알림장 문구를 읽는데, 요즘 감기로 고생하는 준원이가 안스럽기도 하고, 워낙 시크한 이노무 성격이 너무 웃기기도 하고. 어린이집 선생님 입장에서 준원이가 돌보기 편한 아..
북한의 현재? 사진이니 추억과는 무관하지만 어릴 때 놀던 시골 큰집 뒤 학교 놀이터가 생각나는 모습. 이십 년, 삼십 년 전 학교 놀이터는 시멘트로 빚고 반짝이는 페인트 옷을 입은 기린과 사자와 동물들이 있었다. 그곳에 갈 때마다 기린 등에 올라가려고 하다 키가 작아 못 올라가곤 했는데, 어느샌가 시멘트 조각상이 옛날 모습보다도 많이 작아져있었다. 시멘트로 빚은 벤치와 테이블이 투박하지만 수수하게 어울리는 느낌. 날씨 선선한 가을 오후에 아이들 손을 잡고 거닐고 싶다. 북한에는 가기 힘들 것 같고 큰집 뒤 중고등학교가 문득 그립네. 내가 다니고 졸업한 학교도 아니고 가끔 놀러갔던 곳인데.
책을 읽던 중 난독증 이야기가 나와서 문득 궁금해졌다. 미국에는 성공한 사람들 중에 난독증을 이렇게 극복했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다. 이 책에 나온 인물은 아니지만 톰 크루즈도 난독증을 진단받아서 누군가 대본을 읽어주면 외우는 식으로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난독증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 자체를 들은 적이 거의 없다. 어쩌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에 있는 수준의 인지장애로 보기 때문일까요? 말하자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발생빈도는 비슷한데,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인지. 혹은 한글이 워낙 쉬워서 난독증을 덜 겪는 걸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런 글이 있다. "난독증의 증상은 단순히 듣고 말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고 지능도 정상이지만 글을 잘 읽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단어를 정확하게 떠..
늦은 시간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을 나서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준원이를 보고는 귀엽다고들 하신다. 그 전에 준원이가 "할머니!" 하면서 가리켜가며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아이들에 인사를 시키고 다시 가던 길을 가는데 할머니들끼리 '아빠가 퇴근하고 데리고 가는구나. 젊은 아빠네' 하는 말이 들린다. 내 생각엔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답십리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시장을 돌아다니는데 시장 아주머니가 아버지에게 '아빠가 젊으시네, 몇 살에 결혼했냐' 그런 이야길 주고 받으시던 일이 있다. 그게 뭐 별 일인가 싶지만 어쨌든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그 후로도 아버지가 연세에 비해 젊어보이신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것 같다. 가족끼리 객관적인 평가를 하긴 어렵지만 여전히 그러신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기억에 ..
단지가 작아 하나뿐인 놀이터지만 아이들이 오래도록 즐거이 찾던 곳, 이 놀이터는 개미가 많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조용히 쪼그리고 앉아 개미 구경을 하곤 한다. 가끔 운좋게(?) 무당벌레나 풍뎅이같은 것들을 보면, 나는 이때다 싶어 그 이름을 가르쳐주지. 익숙하지만 이제 떠나보내야하는 한강 풍경, 이제와 아쉬운 건, 1년에도 며칠 보기 힘든, 얼어붙은 한강에 눈이 쌓인 모습을 이곳에서는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남은 시간이 길지 않으니 장맛비로 한강이 불어난 모습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길에서 만난 모든 것들과 함께 떠내려갈 듯한 육중한 물살도 또한 그리워질 것 같다. (가을의 시끌벅적한 불꽃놀이는 사실 크게 아쉽지는 않다.) 언젠가, 다시, 다른 자리에서 한강을 바라보기로 하고,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