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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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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나 가을의 문제점(?)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두 계절은 특히 조석으로 일교차가 크다보니 새벽에는 아직 겨울이네, 낮에는 아직 여름이네 하다 보면 지나가기 일수. 가을과 봄은 그렇게 끝과 끝이 확실하지 않고, 길이가 길지는 않은, 완만한듯 빠른 기울기로 변화하는 계절. 하지만 그래도 그 정점이라는 건 있기 마련이고 가을은 단풍의 색깔이 그 시기를 알려준다. 지금 저 밖에는 헷갈리지 않도록 큰 산의 경사면 전체가 울긋불긋 해져서 누가 뭐래도 지금은 가을이야 하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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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잘 몰랐던 수 많은 장소 중 한 곳. 섬이 많고 물이 맑아 해산물이 풍부하고, 언덕이 많은 섬길이 거제, 통영과 여러 모로 비슷한 곳. 이름을 아름다운 물이라고 지을 만하다. 남해안의 해안선에 이런 멋진 곳이 많이 있겠구나.
어제 오늘 오는 비는 유독 빗방울이 이리저리 튀고 부서지는 느낌이다. 크게 방울 방울 떨어지는 비와도 다르고 흩날리며 내리는 비와도 다른 느낌. 눈송이의 질감에 따라 진눈깨비, 싸리눈, 함박눈, 다르게 부르는 것처럼 비도 방울비, 가루비 같은 구분이 있을까 궁금하다. 요 며칠 내린 비는 더 튀고 많이 부서져서 내리는 양에 비해 더 시야를 가린다. 가을비 내린 후에는 반팔 차림 외출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계절은 한바탕 내리는 비가 갈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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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 누구나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을, 사건을 알고 있는 것에 비해 그 배경이나 의미는 정작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의 식민지 경영을 위한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이자 일본의 제국주의의 핵심 권력자. 어디를 가든 특별 열차와 고위 외교관이 응접을 나오는, 안중근의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조선 전국에서 순종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조문과 성금 모금을 했을 만큼 일제에서도 손꼽히는 권력자. 일본에서는 상당히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산실인 조슈번 출신이자, 그 극우주의자들을 길러낸 요시다 쇼인의 제자였다. (얼마 전 서울시 포스터에 친일 상징물들이 총출동했을 때 등장한 것들 중에도 조슈번의 상징 새, 상징 나무가 있었다.) 안중근의 이미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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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작가가 두권으로 펴낸 유럽도시여행 에세이다. 1권은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이번에 읽은 2권은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을 여행했다. 여행 안내서가 아닌, 여행 에세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다는 것 자체가 여행이 주는 어떤 것이 있다는 증명이 될 것이다. 길바닥 위에서 여정旅程이라는 배경을 깔고 펼쳐지는 로드무비도 마찬가지. 웹진형식으로 글을 써보던 시절 내 이야기거리 중 하나가 배낭여행이었고, 지금도 여행을 다녀올 때면 (이내 잊어버리지만) 생각의 싹이 솟아나는 느낌이다. (출퇴근하며 핸드폰과 TV만 보며 지낼 때는 그런 새싹이 돋는 일이 드물다. ) 유시민작가는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본인에게 익숙하고 더 편한 방법으로 여전히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여행지의 다양한 흔적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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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인지는, 이 책 첫장에 나온 글이 좋을 듯 하여 그대로 갖고 와봤다.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스물여섯 살에 임원으로 지명되었지만 홀연히 그 자리를 포기하고 사직서를 냈다. 그 후 태국 밀림의 숲속 사원에 귀의해 ‘나티코’, 즉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고 파란 눈의 스님이 되어 17년간 수행했다. 승려로서 지킬 엄격한 계율조차 편안해지는 경지에 이르자 마흔여섯의 나이에 사원을 떠나기로 하고 승복을 벗었다. 환속 후에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유쾌하고 깊은 통찰력으로 스웨덴인들에게 널리 사랑받던 그는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급격히 몸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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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제주 오름 여행 책인데, 단순하게 요약하자니 아쉬운 생각이 드는 책이다. 대표적인 오름 40곳의 역사,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의미를 풀어쓴 글이다. 에세이 많이, 가이드북 약간, 역사책 약간. 축구로 치면 4.3.3. 정도. 기자 출신 작가가 제주를 사랑한 사진가 고 김영갑과의 인연으로 시작해서 제주 올레를 만들어낸 재단 이사장을 자주 언급하다가 다시 김영갑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순서와 비중이 곧 이 책 저자에게 제주, 오름이 의미하는 것들을 요약해서 말해준다. 기자 출신 작가라고 하면 연상되는 그런 걸쭉하고 소박한 느낌이 진하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정서와는 다른 종류의 감성이다. 이를 닦아도 스며나오는 옅은 소주 냄새를 풍길 것 같은 중년 남자 감성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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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무슨 책인지 알기 어렵다. 카페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내용이다. 카페에 대한 책은 많다. 어쩌다 보니 집에도 카페 창업, 카페 소개, 커피 만들기 등 커피와 카페에 대한 책이 이미 여러 권 있는데 그 책들과는 다른 관점의 책이다. 카페 '경영' 개론이다. 네 곳의 카페를 운영하는 바리스타 사장이 스스로 경험한 것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카페 경영에 대한 조언, 강연들을 해오면서 쌓인 생각들을 책으로 정리했다. 세세한 실무적인 부분을 다루진 않는다. 카페 경영의 큰 틀과 방향에 대한 책이다. 카페의 브랜딩(포지셔닝)의 중요성이 가장 큰 주제이고, 카페의 매출(이익)구조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다. 매장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업종이 달라도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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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스타 작가답게 작가 사진이 공식 표지 이미지에도 많이 쓰인다. 굳이 무슨 내용인지 찾아보지 않고 고른 책인데, 예상 외로(?) 미래 인류와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이다. 미래의 삶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 현실적일 삶의 소소한 장면들을 개연성 있게 구성해보고, 그 안에서 작가는 사람과 구분하기 힘든 인공적인 HW, SW와 사람이 공존하는 삶,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삶이란 것이 인간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어폐가 있지만 말이다. 문득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가 생각났다. 찾아보니 벌써 21년 전의 영화다. 오래되서 잘 기억나진 않지만, 영화 말미에는 주인공 데이빗이 오랜 시간 동안 잠들었다 깨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보존 여건만 양호하면 로봇은 얼마든지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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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견학길에 오른 가족들을 내려주고 잠시 쉴 곳을 찾는다는 게 북악 스카이웨이를 빙 돌아 성북구 어딘가를 헤메다가, 언젠가 지나쳐본 것 같은 곳을 지나 평생 한 번도 와볼 일이 없었던 곳을 거쳐 돌아다녔다. 어느 한 곳 제대로 자리잡고 뭔가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저쪽 동네의 낯선 풍경을 훑고 온 것은 좋았다. 오래된 동네를 통채로 들어내고 원래 있던 골목의 흔적이 아예 사라져버린 '뉴타운' 동네에 살고 있다보니 더 낯설었던 것 아닐까 싶다. 서울이 오래된 도시였지, 하는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 어쩌면 등잔 밑 그늘처럼 가려진 동네, 그런 느낌인데도 구석구석 카페가 있고 맛집이 있고 그곳들을 찾아온 인파가 줄을 서있다. 정말 내가 사는 도시와 같은 도시일까 싶을 만큼 이질적이다. 제주도 둘레길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