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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ZINE
마음, 생각, 기분을 담아 글로 적다보면 그 과정 자체로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냄새나 분위기를 선명한 물질로 고정시키는 것처럼, 순간을 캡처하는 기능을 한다. 사람은 평소에는 영화를 보듯, 영상 속 장면들을 지나치면서 살지만, 때로는 화면을 멈추고 화면 구석 구석에 담긴 소소한 작은 풍경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때가 필요하다. 생각과 감정과 깨달음과 성찰을 글로 옮기는 것과, 화면캡쳐는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 글을 쓰며 화면을 멈추고 보니, 나라는 사람의 정신 속에, 삶 속에 이런 풍경이 있었구나, 발견하는 것. 글쓰기의 의미.
한 번에 여러 책을 그때 그때 내키는 대로 조금씩 읽어가는 습관대로, 요즘은 이 두 권을 주로 읽고 있다. 인간 없는 세상 -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진 순간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생태계, 자연 환경, 도시 공간 같은 것들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상상을 펼치는 책이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각 분야 별로 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예상을 펼치는데, 그 밑바탕에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살아온 역사, 지구에 남긴 장기적인 흔적들, 지금 우리의 사는 모습 같은 것들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다. 국지 분쟁으로 인해 분쟁 당사자 양쪽 모두가 살지 못하게 된 키프로스 섬 해변가 휴양지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이미 현대문명의 손길이 거쳐간 후 불모지가 된 곳의 풍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허감과 호기심과 허무..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몇몇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오늘도 한 친구의 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굳이 알리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들은 70년 내외의 시간을 살면서 호오의 감정과 유무형의 재산과, 가족과,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뒤로 하고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셨다. 내세나 천국이나 윤회를 믿는 것과는 관계 없이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만큼은 '거의'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굳이 이 말을 보탠다.) 모두가 진리로 받아들인다. 하버드 의대 연구소 싱클레어 박사의 노화에 대한 책 서문에는 인생을 풍부하게, 매일매일 의미있게 seize the day하며 살아온 고모(이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더할 수 없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온 그 분조차 죽음을 앞두고는 점점 신체..
용산 아이맥스가 가진 나름의 상징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아이맥스라는 상징성, 화면이 멋진 영화라면, 특히 SF영화라면 일부러 가고 싶은 곳. 화면이 끝내주는 영화를 제대로 봤다 할 수 있는 곳. (영화 장르가 코미디나 드라마였다면 굳이 용아맥을 고집하지 않았다.) 오래 전 주말 새벽에 벌떡 일어나 '알리타, 배틀엔젤'을 보러, 오늘은 집에서 일하면서 보낸 휴가 같지 않은 휴가지만 시간이 빠듯한데 오후 늦게 용산으로 달려간 것도, 용아맥에서 끝내주는 영화를 본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즐거운 경험이라는 상징성, 갬성 때문이다. 연말이고 휴가인데 일하거나 빈둥대기만 한 게 아니라 '아 이거 꼭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뭔가를 했다는 기분은, 그냥 가까운 일반 상영관에서는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스파..
지구를 멸망시킬 혜성이 다가오는데 무식쟁이들의 음모론이 우세한 어이없는 상황과 기타 등등. 재밌는 영화지만 너무 직접적인 비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를 쓴 트럼프 지지자들과, 영화 속에 (혜성 따윈 믿지 말고 하늘을 쳐다보지 말라는 뜻의) Don't Look Up 모자를 쓴 사람들, 그런 지지자들을 선동하면서 내뱉는 메세지는 백인노동자working class white 뿐인 정치인과 (마찬가지 이유로) 현실 정치인에 큰 족적을 남긴 트럼프를 떠올리게 하고, 심지어 무개념 덩어리로 묘사되는 대통령의 비서실장은 철없는 대통령 아들인데, 역시 트럼프의 인척들이 백악관 요직에서 일한 것과 비슷하다. 영화 속, 오직 돈만 밝히는 똑똑하고 말을 더듬..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법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나도 흥미로운 기사, 에세이를 읽고 거기에서 언급된 인물, 책, 이야기를 찾아서 읽곤 했었다. 사피엔스나 총균쇠 같은 책들은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인류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그 삶의 끝인 죽음에 대해서도 사색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문학도와 의사의 길 사이에서 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선택했고, 힘겨운 과정의 끝에 다다를 무렵에 폐암 선고를 받고 오래지 않아 명을 달리한 Paul Kalanithi라는 의사가 생의 마지막을 보내며 쓴 글이다. 그리고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Nina Riggs라는 작가가 전이성 유방암에 걸린 후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얼마 전 출판 에디터의 책을 읽었더니 이 책의 출판 과정이 조금은 상상이 된다. 블로그와 인스타에 캠핑에 대한 글을 쓰다 출판사의 눈에 띄어 책을 낸 듯 하다. 자료 사진, 일러스트 같은 사진, interleaf같은 사진, 사진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여러 상황에 정성 들여 찍은 캠핑 사진들은 잠깐 시간 들여서 만들 수 있는 자료는 아닐 것.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이다. 회사 도서관 선반에 눈에 띄게 진열되어 있어서 골나왔는데, 누군가 신청한 걸 내가 집어온 건지, 관리 업체에서 트렌드 따라 갖다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야 알았지만 여행 분야 베스트셀러다. 요즘 캠핑 책을 몇 권 보다보니 어느 정도 공통점, 차이점이 있다. 캠핑 장비 쪽은 한번 파고들면 따로 책 몇 권이 나올 테니 적당히 짚거나 아예..
21세기자본이라는 책이 유명한 책인 건 알겠는데 일단 시작하면 다 읽는데 한참 걸릴 것 같기도 하고, 요즘 관심이 적은 분야이기도 해서 선뜻 고르지 못했다. 이 책은 만화로 쉽게 되어있어서, 겉핥기라도 쉽게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골랐다. (만화 페이지와 글자로만 된 페이지가 각각 절반 정도.) 주된 내용은 이렇다. 자본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가 노동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빠르다. 인류는 적어도 지난 100~200년간은 소득격차를 벗어난 적이 없다. 전쟁이라는 파괴를 겪으며 불연속적인 시기가 생기지 않는 한, 자본소득 성장을 통해 격차는 커지기 마련이다 등등.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 자본의 성장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직관적이고 널리 수용되는 생각 아닌던가. 돈이 돈을 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
무슨 책인지 모르고 시작해서 재밌게(읽었다는 말이 무색하고) 읽으면서도, 내 생각이 많이 바뀌게(했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만든 책(인데 엄청 오래 걸려서 읽었다.) 이 책은 현재 인간을 사피엔스라는 종류로, 정확하게는 위에 사진에 나온 표현대로, 사피엔스라는 '속'으로 명확히 구분한 후, 이 사피엔스라는 '속'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설명하고 미래의 고민거리까지 이야기하며 마무리된다. (우선 기초적인 잘못된 지식인데 이번에 알게 된 것은 교과서나 어린이 과학잡지에서 접했던 '네안데르탈'인 같은 것이 인류의 연장선상에 있는 '조상'격이 아니라,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 관계에 있던 영장류로, 말하자면 현 인류의 직계 조상보다는 가문이 끊긴 방계에 해당한다는 점.) 사피엔스가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
이 책도 띄엄띄엄 읽어서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기는 힘든데, 큰 줄기는 아래처럼 한줄씩 적으면 이해가 될 듯 하다. - 일본의 자민당과 우파 정치를 관통하는 '일본회의'라는 조직이 있다. 정당도 아니고 일종의 포럼 같은 조직이지만, (이 책 출판 당시 기준) 아베 총리를 포함해서 자민당과 우파 정당의 원내 정치인 대부분이 적을 두고 있을 만큼 커다란 조직이다. - 정치인을 제외하고 이 모임의 주축은 종교단체이다. 일본 전국 8만개에 이르는 신사, 그리고 생장의집이라는 종교단체가 관여되어있다. 생장의집이라는 종교단체는 20세기 초반에 상당한 세를 불렸고 그 창시자가 우파 정치의 이론적인 기반을 세우기도 했다. 다만 이 종교단체는 교주의 세대교체 이후 정치 참여에서 멀어졌다. - 전국에 그 많은 신사들을 총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