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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제주 오름 여행 책인데, 단순하게 요약하자니 아쉬운 생각이 드는 책이다. 대표적인 오름 40곳의 역사,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의미를 풀어쓴 글이다. 에세이 많이, 가이드북 약간, 역사책 약간. 축구로 치면 4.3.3. 정도. 기자 출신 작가가 제주를 사랑한 사진가 고 김영갑과의 인연으로 시작해서 제주 올레를 만들어낸 재단 이사장을 자주 언급하다가 다시 김영갑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순서와 비중이 곧 이 책 저자에게 제주, 오름이 의미하는 것들을 요약해서 말해준다. 기자 출신 작가라고 하면 연상되는 그런 걸쭉하고 소박한 느낌이 진하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정서와는 다른 종류의 감성이다. 이를 닦아도 스며나오는 옅은 소주 냄새를 풍길 것 같은 중년 남자 감성이 가..

제목만 보면 무슨 책인지 알기 어렵다. 카페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내용이다. 카페에 대한 책은 많다. 어쩌다 보니 집에도 카페 창업, 카페 소개, 커피 만들기 등 커피와 카페에 대한 책이 이미 여러 권 있는데 그 책들과는 다른 관점의 책이다. 카페 '경영' 개론이다. 네 곳의 카페를 운영하는 바리스타 사장이 스스로 경험한 것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카페 경영에 대한 조언, 강연들을 해오면서 쌓인 생각들을 책으로 정리했다. 세세한 실무적인 부분을 다루진 않는다. 카페 경영의 큰 틀과 방향에 대한 책이다. 카페의 브랜딩(포지셔닝)의 중요성이 가장 큰 주제이고, 카페의 매출(이익)구조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다. 매장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업종이 달라도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역시 스타 작가답게 작가 사진이 공식 표지 이미지에도 많이 쓰인다. 굳이 무슨 내용인지 찾아보지 않고 고른 책인데, 예상 외로(?) 미래 인류와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이다. 미래의 삶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 현실적일 삶의 소소한 장면들을 개연성 있게 구성해보고, 그 안에서 작가는 사람과 구분하기 힘든 인공적인 HW, SW와 사람이 공존하는 삶,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삶이란 것이 인간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어폐가 있지만 말이다. 문득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가 생각났다. 찾아보니 벌써 21년 전의 영화다. 오래되서 잘 기억나진 않지만, 영화 말미에는 주인공 데이빗이 오랜 시간 동안 잠들었다 깨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보존 여건만 양호하면 로봇은 얼마든지 오랜..

청와대 견학길에 오른 가족들을 내려주고 잠시 쉴 곳을 찾는다는 게 북악 스카이웨이를 빙 돌아 성북구 어딘가를 헤메다가, 언젠가 지나쳐본 것 같은 곳을 지나 평생 한 번도 와볼 일이 없었던 곳을 거쳐 돌아다녔다. 어느 한 곳 제대로 자리잡고 뭔가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저쪽 동네의 낯선 풍경을 훑고 온 것은 좋았다. 오래된 동네를 통채로 들어내고 원래 있던 골목의 흔적이 아예 사라져버린 '뉴타운' 동네에 살고 있다보니 더 낯설었던 것 아닐까 싶다. 서울이 오래된 도시였지, 하는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 어쩌면 등잔 밑 그늘처럼 가려진 동네, 그런 느낌인데도 구석구석 카페가 있고 맛집이 있고 그곳들을 찾아온 인파가 줄을 서있다. 정말 내가 사는 도시와 같은 도시일까 싶을 만큼 이질적이다. 제주도 둘레길만큼..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네이버 영화평을 여러 개도 아니고 딱 한 개 읽어보았는데, "앞뒤 잘 잘라서 깔끔하게 만들었다"는 취지의 그 평이 딱 맞다. 간츠 만화책은 여러 권이다 보니 영화로 만들려면 20세기 한국 드라마 스타일의 '기승전멜로'를 만들 게 아닌 이상, 전투 장면의 '그림'과 삶과 죽음이 갈리는 '드라마'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긴 하겠다. 오랜만에 보는 일본 애니메이션인데 마블이나 DC의 히어로물이 떠오르는 건... 나뿐은 아닐 것 같다. 선과 악(?)이 싸우는 동안 도시는 엉망진창으로 파괴되고,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는 것에 비해서는 (마치 텅빈 세트를 부수기라도 한 것처럼) 그다지 잔인하지도 않고, 나중에는 그 누구도 재건에는 신경쓰지 않는 듯 하지만 언제나 도시는 평소처럼 돌아가는 듯..

독후감은 아니지만 이미 블로그에 이 책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개전 초기 엄청난 실력으로 일본 해군과의 전투에서 연전 연승하는 장면을 신나게 읽다가 본격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는 장면을 읽을 때가 되니,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결과를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갈등 국면에 접어드는 스트레스가 느껴진다는 글이었다. 황현필님의 임진왜란 시리즈 유튜브 영상에서 드라마틱하게 표현된 부분이 책에서는 많이 절제되어 있어서, 생각보다는 원균 때문에 답답한 부분은 많지 않았다. 원균은 세상 보기 드문 역사적 악당이지만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은 악당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자가 조절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 번에 관련 글을 쓸 때 표지 사진을 가져다 썼는데, 다시 표지 사진을 찾다 ..

저자를 잘은 모르지만 IT 칼럼니스트라 하면 맞을 것 같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고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 나라야 라고 어느새 나름 괜찮아진 현실을 음미하고 감탄하는 내용은 아니고, 외형적으로 선진국을 이뤄냈다면 이제는 이렇게, 저렇게, 노력을 더 해서 내실도 높여보자는 제언들을 모은 글이다. 한국이 외형적인,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이루었지만 사회의 작동원리로 깊숙히 자리잡지 못했다고 하던 시절 민주주의를 논했듯, 선진국의 겉을 갖춘 건 맞고 앞으로는 속(내면)도 갖춰보자고 하는 듯 하다. 글을 많이 쓰는 분인지 문체가 쉽게 읽히고, 나열된 사례들이 꼰대스럽지 않고, 마음에 와닿는 부분도 많았다. 무겁지 않은 자기개발서로 주말에 한 권 읽기에 좋겠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나씩 거쳐가는 학습과제들이 있는 것처..

마음, 생각, 기분을 담아 글로 적다보면 그 과정 자체로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냄새나 분위기를 선명한 물질로 고정시키는 것처럼, 순간을 캡처하는 기능을 한다. 사람은 평소에는 영화를 보듯, 영상 속 장면들을 지나치면서 살지만, 때로는 화면을 멈추고 화면 구석 구석에 담긴 소소한 작은 풍경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때가 필요하다. 생각과 감정과 깨달음과 성찰을 글로 옮기는 것과, 화면캡쳐는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 글을 쓰며 화면을 멈추고 보니, 나라는 사람의 정신 속에, 삶 속에 이런 풍경이 있었구나, 발견하는 것. 글쓰기의 의미.

한 번에 여러 책을 그때 그때 내키는 대로 조금씩 읽어가는 습관대로, 요즘은 이 두 권을 주로 읽고 있다. 인간 없는 세상 -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진 순간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생태계, 자연 환경, 도시 공간 같은 것들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상상을 펼치는 책이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각 분야 별로 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예상을 펼치는데, 그 밑바탕에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살아온 역사, 지구에 남긴 장기적인 흔적들, 지금 우리의 사는 모습 같은 것들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다. 국지 분쟁으로 인해 분쟁 당사자 양쪽 모두가 살지 못하게 된 키프로스 섬 해변가 휴양지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이미 현대문명의 손길이 거쳐간 후 불모지가 된 곳의 풍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허감과 호기심과 허무..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몇몇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오늘도 한 친구의 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굳이 알리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들은 70년 내외의 시간을 살면서 호오의 감정과 유무형의 재산과, 가족과,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뒤로 하고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셨다. 내세나 천국이나 윤회를 믿는 것과는 관계 없이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만큼은 '거의'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굳이 이 말을 보탠다.) 모두가 진리로 받아들인다. 하버드 의대 연구소 싱클레어 박사의 노화에 대한 책 서문에는 인생을 풍부하게, 매일매일 의미있게 seize the day하며 살아온 고모(이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더할 수 없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온 그 분조차 죽음을 앞두고는 점점 신체..